2010년 10월 16일 토요일

필리핀 클락 관광

    2차대전 뒤 미국 공군기지가 자리잡았던 이 도시는 1991년을 기점으로 운명이 바뀐다. 인근의 피나투보 산이 20세기 화산 폭발 중 두번째라는 대규모 분출을 하며 주변 도시를 덮었고, 이 여파로 미 공군이 철수하면서 지역경제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필리핀 정부는 클라크와 수비크 지역을 경제특별구역으로 지정해 경제 살리기에 나섰고, 이때 수많은 한국인들의 투자도 이뤄졌다고 한다.


    피나투보 산 정상에서 5㎞ 떨어진 산 중턱에 자리잡은 푸닝온천의 운영자도 한국인이라고 했다. 화산 폭발 뒤 생겨난 온천지대를 한국인이 투자해 클라크 일대의 대표적인 온천 명소로 키운 곳이다. 2005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살려 개발해 문 연, 피나투보 산 주변의 유일한 온천이다. 사륜구동 지프를 타고 물길·산길을 달려야 닿는 이 온천은, 찾아가는 길의 경관도 찾아가 만난 경관도 예상을 뛰어넘었다.


    푸닝 온천지대는 3구역으로 나뉜다. 방문자센터 겸 식당인 베이스캠프, 화산재 찜질·마사지를 하는 스파, 그리고 노천 욕탕 즐비한 온천 구역 등이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해 지프로 갈아탄 뒤, 스파 구역을 거쳐 화산재 덮인 협곡 사이로 흐르는 거친 물길(뜨끈뜨끈한 온천수다)을 헤치며 20여분을 달리면 거대한 절벽 밑에 자리잡은 온천에 이른다.



   산비탈을 따라 야자수 잎을 엮어 지붕을 올린 정자 모양의 건물들이 즐비한데, 이것들이 온도별로 구분된 온천탕이다. 절벽 한쪽에서 흘러나오는 온천수의 온도는 섭씨 100도 가까운데, 흘러내리는 동안 식으면서 70도~40도의 욕탕으로 차례로 흘러든다. 온천 직원 데니스 로아레스(23)는 “협곡 물의 온도도 섭씨 50도가 넘는다”며 “유황 성분이 함유돼 피부에 좋고 관절염에도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손을 넣으면 델 듯이 뜨거운 탕인데도 김은 오르지 않는다. 높은 습도와 기온 때문이다.



    온천 물길을 따라 전망대에 오르면, 물길이 흘러나가는 온천 입구 쪽 풍경과 산비탈에 자리잡은 온천탕 건물들이, 솜사탕처럼 흰 구름덩이들 두둥실 뜬 짙푸른 하늘 밑으로 펼쳐진다. 세계적으로 이름 높다는 이른바 ‘필리핀 스카이블루’ 빛깔을 실감할 수 있다. 골프 여행에 딸린 탐방지가 아니라, 여행 목적지로 삼아도 될 법한 경관이다.


 60여명에 이르는 온천 직원들은 모두 피나투보 일대에 터를 잡고 살아오던 아에타족이다. 피나투보 화산 분출 당시 900여명에 이르렀던 희생자 대부분이 아에타족이라고 한다. 아에타족은 그 뒤 마련된 아에타족 보호구역이나 주변의 도시들로 흩어져 생활하고 있다. 필리핀 관광청 직원 미카 안젤라는 “이 온천지대 주변 땅도 아에타족 소유”라며 “온천 운영자가 임대해서 쓰고 있다”고 했다.


    온천 이용객들은 왕복 지프 차량과 온천욕, 화산재 찜질, 머드 마사지, 점심식사를 세트로 이용(1인당 3000페소: 약 8만여원)하도록 돼 있다. 찜질과 마사지는 ‘스파 구역’에서 이뤄진다. 뜨거운 화산모래 깔린 건물 안 바닥에 누우면, 한 남자가 삽으로 화산재를 퍼 머리를 제외한 온몸을 덮어준다. 그러면 한 여자가 몸 위로 올라서서 팔다리를 자근자근 밟아주고, 또 한 여자는 땀을 닦아주며 부채질을 해준다. 머드 전신 마사지엔 화산재를 말려 유칼립투스 잎과 섞어 만든 고운 흙을 사용한다.



   클라크와 수비크 만 일대를 찾는 외국인·내국인 여행객 모두에게 인기를 끄는 볼거리가, 30여마리의 시베리아·벵골 호랑이들을 자연 상태에서 기르는 ‘주비크 사파리’ 공원, 그리고 바닷가의 거대한 가두리에서 상어·돌고래 등을 만날 수 있는 ‘수비크 해양 모험 워터파크’ 등이다.



    주비크 사파리 공원은 필리핀 유일의 호랑이 사파리 공원으로, 사자·낙타·타조·멧돼지 등 다양한 동물을 함께 만날 수 있는 장소다. 주로 길을 잃거나 다친 야생동물들을 사육하는 곳이다. 촘촘한 철망을 씌운 지프니 차량으로 25헥타르 넓이의 호랑이 방목지를 돌며 10여마리의 호랑이를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게 했다. 철망 코앞까지 다가와 낮게 신음하며 입을 쩍 벌리는 호랑이들 모습에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다. 사파리 공원 일대엔 2차대전 당시 미군이 만든 탄약고(시멘트 구조물)가 여러개 흩어져 있다. 공원 쪽에선 이 탄약고를 동물 교미 장소로 쓰거나 직원 숙소로 사용한다.



    수비크 만의 ‘해양 모험 공원’은 상어와 돌고래들에게 직접 먹이주기 체험 등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자연 상태에 가까운, 널찍한 가두리 안에서 기르는 것들이다. 상어에겐 집게를 이용해 물고기를 먹이고, 돌고래에겐 작은 모래해변의 얕은 물속에 들어가 직접 만져보며 먹이를 줄 수 있다. 바다사자에게 이끌려 물살을 가르는 체험도 할 수 있다. 다치고 병든 고래·돌고래를 보호·치료해주는, 필리핀 유일의 ‘고래재활센터’가 이곳에 있다.



     사파리 공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정글 모험 시설인 ‘트리 톱 어드벤처 공원’도 있다. 30미터 높이의 나무들 사이를 오가며 집라인·점프·자유낙하 등 짜릿한 모험과 정글 트레킹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뿌리가 부챗살처럼 퍼져나온 거대한 판근목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트레킹 코스에선 원주민이 칼과 대나무만으로 불을 피우는, 전통 채화 방법을 시연해 주기도 한다.



    전통문화에 관심이 있다면 민속마을 ‘나용 필리피노’ 탐방을 빼놓을 수 없다. 남녀 연기자 수십명이 전통 옷차림으로 나와 각 부족의 전설과 춤사위를 보여주는 전통문화 공연, 전통 직물과 의상을 만날 수 있는 나용박물관 등이 볼거리다. 박물관에서 시연해 보여주는, 전통 의상 ‘말롱’의 다양한 변신 모습이 놀랍다. 치마, 바지, 두건, 가방, 재킷, 아기 포대기 등 활용 방법이 100가지에 이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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